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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민은 1776 7 4일에 대륙회의가 잉글랜드와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단절하고 신생 독립국인 미합중국을 건국한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7 4일에 독립기념일을 자축한다.

독립전쟁은 1775년 4월 19일에 영국군이 매사추세츠 민병대를 급습한 것을 기화로 촉발됐다. 식민지 진영은 즉시 전열을 정비하고 영국군에 저항했다. 1775년 5월에 제2차 대륙회의가 소집됐으며 조지 워싱턴 버니지아 대의원이 대륙군 총사령관에 임명됐다. 워싱턴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영국에 맞서 미국 군대를 이끌었다. 식민지 진영은 독립을 목표로 8년 동안 격렬하게 투쟁했다. 그들은 영국군에 비해 훈련과 물자가 부족했지만 우위를 점하고 있는 부분들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확고하게 단합된 목표가 있었고 익숙한 지형을 배경으로 전투에 임했으며 원주민들로부터 습득한 새로운 전술을 활용했다. 병사들에게 군복이 없는 경우가 많았지만 평상시 복장이 산속에서는 오히려 위장에 도움이 된 반면에 이른바 ‘레드 코트’를 착용한 영국군은 화려한 붉은색 제복 때문에 쉽게 눈에 띄었다.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전투를 치르는 동안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에서는 또 다른 전쟁이―설전이―벌어지고 있었다. 1776년 7월 2일, 대륙회의는 불만 사항을 열거한 문서를 2차로 작성했다. 대륙회의 의장이었던 존 핸콕이 이 문서에 가장 먼저 서명했다. 영국 왕실은 이 문서(독립선언서)를 반역 행위로 간주했으며 서명자 56명은 처형당할 위험에 처했다. 하지만 대륙회의는 이에 굴하지 않고 1776년 7월 4일에 독립선언서를 승인함으로써 잉글랜드와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단절하고 신생 독립국인 미합중국을 건국했다.

독립기념일은 영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언한 날인 7월 4일에 기념한다. 독립선언서는 1776년 7월 8일에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됐으며 주민들은 이에 환호했다. 종이 울리고 악단이 축가를 연주했으며 선박은 축포를 쏘았다. 주민들은 촛불을 밝히고 폭죽을 터뜨렸다. 하지만 독립전쟁은 최종적으로 독립을 거머쥔 1783년까지 지루하게 이어졌다. 이해에 열세 개 신생주가 독립기념일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독립기념일은 1941년에 가서야 연방 국경일로 공식 선포됐다.

미국의 제2대 대통령이었던 존 애덤스는 독립선언서 서명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 후손들이 이날을 가장 성대한 축제로 기념하리라고 생각하오 … 국토를 가로질러 공연, 게임, 스포츠, 축포, 타종, 모닥불, 조명을 통해 이날을 장대하고 화려하게 (기념해야) 할 것이오”라고 적었다. 존 애덤스의 글은 후대의 독립기념일 행사를 미리 예측한 것일 수도 있고 그에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다. 실제로 초창기 독립기념일 혹은 ‘7월 4일’ 경축 행사에서는 게임과 스포츠 경기, 공연, 민병대 퍼레이드, 불꽃놀이와 더불어 총포를 자유롭게 발포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총기와 불꽃놀이로 인해 부상자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심지어는 사망자가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1900년대 초반이 되자 시민들이 정부 관계자들을 설득하여 독립기념일에 총기 소지를 금하고 불꽃놀이를 제한했다. ‘안전하고 분별 있는 7월 4일’이라는 표어가 널리 확산됐으며 안전과 상식을 강조할 목적으로 오늘날에도 이 표어가 통용되고 있다. 지금은 상당수 도시에서 아예 불꽃놀이를 금지하거나 체리 폭탄과 스파클러 같은 소형 폭죽만을 허용하고 있다. 몇몇 도시들은 자격을 갖춘 화약 전문가를 고용하여 지역 내에서 불꽃놀이를 개최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인들은 매년 독립기념일이 돌아오면 학교나 직장을 벗어나 하룻동안 휴식을 갖는다. 지역사회나 가족 단위로 핫도그와 햄버거, 감자 샐러드, 베이크드빈스, 파이, 수박 등 평소 좋아하던 음식을 나누면서 온종일 피크닉을 즐긴다. 오후에는 생생한 음악이나 친선 야구 경기 혹은 프리스비 주고받기를 빼놓을 수 없으며 2인3각 경주와 파이 먹기 혹은 수박 먹기 대회가 포함될 수도 있다. 일부 도시에서는 시민들이 ‘건국 시조’나 초기 식민지 개척민 복장으로 고등학교 악대의 합주에 맞춰 시가지를 행진하는 퍼레이드를 기획하기도 한다. 저녁 무렵이 되면 시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시에서 주관하는 불꽃놀이를 관람한다. 전국 각지에서 특별한 행사들이 개최된다.

예를 들어,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의 경우에는 독립선언서 서명식이 거행됐던 독립기념관에서 프리덤 페스티벌이 펼쳐진다. 이 행사에서는 전통 복장을 차려 입은 참가자들이 역사 속의 장면을 재연하고 관객을 상대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경우가 많다. 매사추세츠의 경우 존 F. 케네디 함이 7월 4일에 돛을 활짝 펴고 보스턴 항으로 입항하면 수백 명의 시민이 바다 위에서 벌어지는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가운데 보스턴 팝스 오케스트라가 애국심을 고취하는 곡들을 연주한다.

자유의 

‘국토 전역에서 모든 시민들에게 자유를 선포한다.’

7월 4일에 종을 타종하는 모습과 소리는 대부분의 미국인에게 자유를 상징하며 신생국 미국이 태동했을 당시 필라델피아에 울려 퍼진 자유의 종을 떠올리게 만든다.

한때 자유의 종은 지금은 독립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필라델피아 주정부 청사에 걸려 있었다. 자유의 종은 대통령 선거와 유력 정치인의 장례식 그리고 독립기념일을 당연히 포함하여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타종 행사에 사용됐다. 자유의 종은 잉글랜드에서 제작되어 1752년에 필라델피아에 도착했다. 하지만 맨 처음 종을 치는 순간 금이 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러자 보수 작업이 이뤄졌으며 그후로는 83년 동안 특별한 날에만 종을 울렸다. 독립선언서 서명을 기념하여 1776년 7월 8일에 실시된 타종식이 가장 대표적인 예였다.

자유의 종은 1846년 이후에 다시 균열을 일으켰으며 더 이상의 훼손을 막기 위해 종루에서 철거됐다. 그 후로 자유의 종은 독립기념관에 전시됐다. 오늘날에는 국가독립역사공원 내에 설치된 자유의 종 센터에 보관되어 있으며 관람객에게 연중 개방되고 있다.

한번은 잉글랜드 주조 공장에서 균열이 생긴 자유의 종을 회수한 후 녹여서 무상으로 새 종을 제작하겠노라고 제안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미국 측 관계자들은 자유의 종을 원상 그대로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미국 국민들이 예전의 종에 애정을 품고 있으며 갈라진 금조차도 소중한 전통과 가치의 일부분을 구성한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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