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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立春)은 24절기의 첫 번째로, 음력 정월(正月)의 절기이며 봄의 시작으로 본다. 태양의 황경이 315˚에 드는 때이며 양력으로 대개 2월 4일 또는 5일이 된다. 아직 추운 겨울이지만 햇빛이 강해지고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동지가 지난 후 태양이 다시 북반구 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북반구 쪽의 지구가 천천히 달구어지는 시차가 존재하여 입춘이 지난 후 한 달 정도 지나야 계절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다. 실제로는 춘분이 되어야 본격적인 봄이라고 할 수 있다.(하지 때가 가장 더운 게 아니라 한 달 정도 지난 7월 말부터 최고로 더운 것처럼. 물론 장마철이 끼어있어서 덜 덥기는 하다.) 실제로는 3월 초가 되어야 봄에 가까워진다.

대한과 우수 사이에 있다. 입춘은 음력으로 주로 정월에 드는데, 어떤 해는 정월과 섣달에 거듭 들어 ‘재봉춘(再逢春)’이라 한다.

봄이 시작하는 날이라 하여 입춘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즉, 절분. 대개 이 때를 즈음해서 설날이 온다. 그래서 음력에서는 봄이 1, 2, 3월인 것. 하지만 중국 화북지방을 중심으로 정한 명칭이라 우리나라의 기후와는 잘 맞지 않는다.

많은 사주가들이 입춘을 해가 넘어가는 기준점으로 생각한다. 태양의 중심이 황경 315˚에 일치하는 입춘 절입시각을 기준으로 전년도와 금년도를 구분한다. 몇몇 사람들은 이것이 한중일의 전통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사주가들이 사주 볼 때나 사용하는 기준이지 일반 사회에서 통용되는 기준은 아니다. 심지어 조선시대에도, 일반에서는 음력 1월 1일에 새 간지가 시작된다고 여겼다. 예를 들어 조선왕조실록만 보아도 매년 1월 1일에는 본문 위에 새해의 간지를 작게 써두었다.

사주가들은 12지에 해당하는 띠를 사주명리에서처럼 입춘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상당수 사람들은 음력 기준이라고 간주한다. 설날과 입춘이 가깝기 때문에 이렇게 해도 대부분은 거의 차이가 안 나기도 하고. 편하게 양력 1월 1일을 기준으로 간지를 나누는 사람도 많다. 현재는 이 절기를 시점으로 나뉘고있는 것이 통상적이다.

역사적으로 연도 기산의 기준점으로 애용되던 절기는 동지와 춘분이다. 입춘은 이 둘 사이의 정확히 가운데 있음이 특기할 만한 부분이긴 하겠다. 그렇다고 아주 근거가 없는 건 아닌 게, 한자문화권에선 옛날부터 이 전날을 ‘해넘이’라 하여 귀신을 쫓을 목적으로 방이나 마당에 콩을 뿌리는 풍습이 있었다. 이것은 한무제가 연도의 기산점을 자월(동짓달:음력 11월)에서 인월(동짓달로부터 2달 뒤)로 바꾸면서 남은 흔적이다. 그래서 설날을 연도별로 추적해보면 입춘을 기준으로 하여 ±15일 범위 내(대한부터 우수까지)에서 오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설 입(립)立, 봄 춘春, 큰 대大, 길할 길吉
세울 건建, 볕 양陽, 많을 다多, 경사 경慶
입춘대길 건양다경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합니다‘라는 의미.
남인의 거두 미수 허목이 만들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이날 ‘입춘대길'(立春大吉:입춘을 맞이하여 좋은 일이 많이 생기라는 뜻)이라는 축원을 대문이나 대들보, 천정에 붙였다. 액막이. 이 외에도 소문만복래(웃으면 만복이 온다) 등의 축원도 자주 나오는 축원. 맹꽁이 서당에서는 이 축원들을 아주 황당하게 패러디해놔서 훈장을 또 골탕먹였다.

농가에서는 보리 뿌리를 뽑아 보고 뿌리수를 통해 그해 농사가 잘 될지 어떨지를 점치기도 하였다. 3은 풍작, 2는 평년작, 1이나 없으면 흉작.

음력으로 한 해에 양력 절기인 입춘이 두 번 들어 있으면 ‘쌍춘년'(雙春年)이라고 하여 그해에 결혼하는 것이 길하다고 받아들여져왔다. 즉, 윤달이 든 해로 2006년이 대표적인데, 기원전부터 지금까지 윤달이 12번밖에 없다는 것은 헛소문이므로 무시해도 좋다.

입춘날 입춘절식이라 하여 궁중에서는 오신반(五辛盤)을 수라상에 얹고, 민가에서는 세생채(細生菜)를 만들어 먹으며, 함경도에서는 민간에서 명태순대를 만들어 먹는다. 오신반은 겨자와 함께 무치는 생채요리로 매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움파, 산갓, 승검초, 미나리 싹, 무 싹, 파, 마늘, 달래 등 강한 자극을 가진 나물 중 다섯 가지를 골라서 만들었다고 한다. 겨울동안 결핍되었던 채소를 보충하기 위한것이다. 또 이것을 본떠 민간에서는 입춘날 눈 밑에 돋아난 햇나물을 뜯어다가 무쳐서 입춘 절식으로 먹는 풍속이 생겨났는데 이를 세생채라 하여 파·겨자·당귀의 어린 싹으로 입춘채(立春菜)를 만들어 이웃간에 나눠먹는 풍속도 있었다.

일본에서는 입춘 전날을 세쓰분(세츠분)이라고 하여 콩을 뿌리고 김밥을 먹는 행사를 한다. 절분 가운데 유일한 명절이라고 한다. 하지만 중국, 한국에서는 옛날처럼 절분을 쇠는 풍습은 거의 사라졌다. 반면 입춘 당일날은 한국만큼 중요시하지 않는다. 입춘대길 축원문을 써 붙여두는 풍습이 있긴 하나 한국만큼 흔하지 않으며, 그나마도 건양다경이 아니라 ‘진방화촉'(鎮防火燭, 불씨를 조심하자)라는 말을 곁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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