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표 불러오는 중

석가의 원래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다. 그는 열가지의 이름으로 불리는데 가장 무난한 호칭은 ‘석가모니’다. ‘석가모니’는 석가(Sakya)족에서 태어난 성자 또는 수도자(muni)라는 뜻이다. ‘석가여래’는 진리에서 온 사람을 의미하고 ‘석가세존’은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사람을 의미한다.
그는 29세에 출가했다. 불교에서 출가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잘못된 가치관을 버리고 새로 태어나는 것이며 모든 기득권을 버리는 것이다. 석가모니 자신이 왕자의 신분을 버림으로써 ‘출가’가 어떤 것인가를 실감 있게 보여주었다. 석가모니가 이 세상에 남기고 간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는 열반에 들기 전 제자들을 모아놓고 설법을 했는데 그 내용은 불교의 핵심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죽은 뒤에는 너 자신을 등불로 삼아라.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에 의지하라. 여래는 육신이 아니라 깨달음의 지혜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자등명 법등명’이다. 인간은 부지런히 수련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으며 사람에 의지하지 말고 진리에만 의지하며 관념의 쇠사슬에서 풀려난 깨달음이 있어야 진리를 바로 보게 된다는 뜻이다.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로 표현할 때 불교가 ‘깨달음의 종교’로 비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누구나 깨우치면 부처가 될 수 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부처인데 그릇된 가치관 때문에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즉 불교는 부처의 가르침을 전하는 종교이기도 하지만 인간 자신이 부처인 것을 발견하는 길을 가르치는 종교라는데 특색이 있다. 구세주를 따로 갖지 않는다. 자신이 자기의 구원자다.
석가모니는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온 것이 아니고 인간이 부처인 것을 깨닫게 해주러 온 사람이다. 이점에서 다른 종교와 다르다. 누가 “다운타운을 가려면 어디로 가야합니까”라고 물었다 하자. 이때 어떤 친절한 사람이 “저기 보이는 큰길로 똑바로 가면 됩니다”하고 손으로 방향을 가리켜 준 그 사람이 바로 석가모니다. 그 길로 가느냐 안 가느냐는 길을 물어본 사람의 선택이다.
불교에서는 “무엇으로 말미암아 무엇이 있다”는 연기의 법칙을 중요시한다. “생이 있음으로 죽음이 있다” “만남으로 헤어짐이 있다.” 생자필멸 회자정리. 이것이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서 수련 끝에 깨달은 상대적 존재론이다. 연기의 법칙은 석가모니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고 원래부터 존재해온 것을 자신이 깨달아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뿐이라는 것이 석가모니가 제자들에게 편 설법 내용이다. 깨달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느냐. 탐욕을 버려야 한다. 탐욕 때문에 인간의 시야가 흐려지고 미혹의 세계에서 헤매게 된다.
깨닫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 집착이다. 집착이 괴로움의 주원인이다.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기 때문에 집착을 버리면 괴로움도 없어진다. 가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가질수록 더 가지려고 하는 집착이 문제다. 불교에서 ‘무소유’가 강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소유욕이 심할수록 인간은 악업을 쌓게되며 내가 행복해지려는 집착 때문에 남을 불행하게 만드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상호 연관되어 변화하므로 내가 움직일 때마다 나쁜 일이든 좋은 일이든 나도 모르게 업을 쌓게된다. 악인이나 선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업을 쌓는데 따라 그렇게 인식되는 것이며 자신이 부처인 것을 발견하려는 노력이 없기 때문에 눈이 떠지지가 않는다. 작은 촛불이 어둠을 밝히는 것처럼 인간도 탐욕과 집착을 버릴 때 어두운 마음속에서 촛불이 켜진다.
‘부처님 오신날’의 뜻은 부처님이 중생을 구하려고 왔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오역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부처임을 깨우쳐주려 부처님이 오신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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