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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현충일
DESCRIPTION:현충일(顯忠日)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殉國先烈)과 전몰(戰歿)한 장병들의 충렬을 기리고 얼을 위로하기 위하여 지정된 대한민국의 기념일이다. 매년 6월 6일로\, 전국 각지에서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애국선열과 국군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 충절을 추모하는 행사를 거행한다. \n현충일에는 관공서와 각 가정\, 민간 기업\, 각종 단체에서 조기(弔旗)를 게양한다. 대통령 이하 3부 요인 등과 국민들은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오전 10시 정각에 전 국민이 경건한 마음으로 명복을 비는 묵념을 1분 동안 행한다. 1970년 6월 15일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대통령으로 공포하여 공휴일로 정하였다. \n공휴일이기는 하지만 국경일이 아니다. 정확히는 국가 추념일이다. 국경일은 말 그대로 “국가의 경사스러운 날”인데 이 날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을 추모하기 위해 지정된 날이기 때문이다. \n현충일이 6월 6일로 지정된 이유는 6월에 6.25 전쟁이 발발한 달이라는 점도 있지만 24절기 상으로는 ‘망종’과 겹친다는 점에서 착안됐다. 특히 고려 현종 5년(1014) 6월에 거란과의 전쟁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유골을 집으로 보내 제사를 지내게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렇게 망종 즈음에 전몰자들을 위해 제사를 지냈던 전통을 고려한 것이라고 한다. \n1956년 4월 25일에 공포된 ‘현충기념일에관한건'(국방부령)에 의하여 “현충기념일”로 불리다가\, 1982년부터 개정 ‘각종기념일등에관한규정'(대통령령)으로 말미암아 해당 규정상의 기념일로 편입되었다(사문화된 ‘현충기념일에관한건’은 2012년 1월 2일 폐지). \n매년 현충일에는 국립서울현충원 또는 국립대전현충원에서 대한민국 대통령과 3부요인이 참석한 가운데 정부(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추념식을 거행한다. 이 추념식에는 오전 10시 사이렌 발령과 동시에 조포를 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보통은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정부 주관 추념식을 거행하지만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정부 주관 추념식을 하는 경우도 있다.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정부 주관 추념식을 거행할 경우 국립대전현충원의 추념식은 대전광역시 주관으로 열리되 정부 주관 추념식에 준하는 수준으로 진행된다. 이는 대전 역시 현충원을 보유하고 있는 지자체이기 때문이다. 현충원 외에도 참전용사가 안장된 호국원과 순국선열공원 등지에서 각 지자체가 주관하는 추념행사가 진행된다. 생존 참전용사 등에 대해 국가유공자증 수여식도 같이 전개되는데\, 순국 시 유가족이 받는다. \n국경일은 아니지만\, 국군의 날과 함께 국기를 게양해야 하는 날이다(대한민국국기법 제8조 제1항 제2호). 1년 365일 가운데 몇 없는 조기를 게양하는 날이며(같은 법 제9조 제1항 제2호)\, 오전 10시 정각부터 1분간 동사무소 사이렌 소리에 맞춰서 묵념을 한다. 참고로\, 조기는 국가장 기간에도 달아야 한다. \n현충일이 일요일인 해에는 광복절도 같이 일요일이 되므로 여름 석 달 동안 휴가철과 토\, 일요일을 빼고는 쉬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된다. 물론 이 경우에 개천절은 일요일이고 한글날과 크리스마스도 토요일. 제헌절이 재지정되어도 토요일이라 제대로 못 쉰다. \n현충일을 날짜제에서 요일제로 바꾸는 방안이 있다. 2015년 현충일을 6월 6일에서 6월 첫째 주 월요일로 옮기는 방안이 추진되다가 흐지부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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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단오
DESCRIPTION:단오(端午)는 동아시아의 명절의 하나로\, 음력 5월 5일이다. 다른 말로 ‘술의 날’ 또는 순 우리말로’수릿날’이라고도 한다. 시기적으로 더운 여름을 맞기 전의 초하(初夏)의 계절이며\,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기풍제이기도 하다. 수릿떡을 해먹거나\, 여자는 그네뛰기\, 남자는 씨름을 한다. 조상의 묘에 가서 성묘를 가기도 하고\, 창포삶은 물에 머리를 감는다. 강릉과 전라남도 영광에서는 단오제를 열기도 한다. 강릉에서 열리는 것은 강릉 단오제\, 영광 법성면에서 열리는 것은 법성포 단오제이다. 법성포 단오제 마지막날 저녁에는 풍등을 올린다. 이때 소원을 빌면서 열기구와 비슷한 원리로 불을 붙인 풍등을 하늘로 올린다. 또한\, 서울 영등포에서도 단오축제가 열리는데 서울에서 가장 큰 단오행사로 주민뿐만아니라 다른지역의 주민들도 방문하는 전국적인 축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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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Father's Day 미국의 아버지날
DESCRIPTION:미국에는 Mother’s Day와\n별개로 Father’s Day도 축하하고 있습니다.\n \nFather’s Day의 유래는\n1910년 미국 워싱턴 주에서 시작합니다. \n\n\n\n\n\n\n\n\n\n다드라(dodd)는 남북전쟁의 참전 후에\n\n\n\n\n\n\n\n\n\n5남 1녀의 6남매를 훌륭하게 키워낸\n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묘지를 흰색 장미로 장식하고\n그날을 축복하기를 교회에 부탁하였습니다.\n \n당시엔 아버지는 가정에 무심한 이미지였고\,\n아버지의 날이 ‘반짝 특수’를 노리는 상업적으로\n변질될 우려에 반발이 거셌지만\n1966년\, 6월 셋째 주 일요일에\n‘Father’s Day’를 기념하기로 정식 선포되었습니다. \n이후 미국뿐 아니라 \n\n\n\n\n\n\n\n\n\n\n\n\n영국·캐나다·프랑스·헝가리·중국 등\n많은 나라가 이날 아버지에게 감사를 전하고 있습니다.\n \nFather’s Day에는 자신의 아버지뿐만 아니라\n살아오면서 버팀목이 되어주신\n삼촌이나\, 큰아버지\, 작은 아버지 혹은 스승에게\n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날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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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미국 독립 기념일 - 4th of July
DESCRIPTION:미국 국민은 1776년 7월 4일에 대륙회의가 잉글랜드와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단절하고 신생 독립국인 미합중국을 건국한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7월 4일에 독립기념일을 자축한다. \n독립전쟁은 1775년 4월 19일에 영국군이 매사추세츠 민병대를 급습한 것을 기화로 촉발됐다. 식민지 진영은 즉시 전열을 정비하고 영국군에 저항했다. 1775년 5월에 제2차 대륙회의가 소집됐으며 조지 워싱턴 버니지아 대의원이 대륙군 총사령관에 임명됐다. 워싱턴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영국에 맞서 미국 군대를 이끌었다. 식민지 진영은 독립을 목표로 8년 동안 격렬하게 투쟁했다. 그들은 영국군에 비해 훈련과 물자가 부족했지만 우위를 점하고 있는 부분들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확고하게 단합된 목표가 있었고 익숙한 지형을 배경으로 전투에 임했으며 원주민들로부터 습득한 새로운 전술을 활용했다. 병사들에게 군복이 없는 경우가 많았지만 평상시 복장이 산속에서는 오히려 위장에 도움이 된 반면에 이른바 ‘레드 코트’를 착용한 영국군은 화려한 붉은색 제복 때문에 쉽게 눈에 띄었다. \n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전투를 치르는 동안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에서는 또 다른 전쟁이―설전이―벌어지고 있었다. 1776년 7월 2일\, 대륙회의는 불만 사항을 열거한 문서를 2차로 작성했다. 대륙회의 의장이었던 존 핸콕이 이 문서에 가장 먼저 서명했다. 영국 왕실은 이 문서(독립선언서)를 반역 행위로 간주했으며 서명자 56명은 처형당할 위험에 처했다. 하지만 대륙회의는 이에 굴하지 않고 1776년 7월 4일에 독립선언서를 승인함으로써 잉글랜드와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단절하고 신생 독립국인 미합중국을 건국했다. \n독립기념일은 영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언한 날인 7월 4일에 기념한다. 독립선언서는 1776년 7월 8일에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됐으며 주민들은 이에 환호했다. 종이 울리고 악단이 축가를 연주했으며 선박은 축포를 쏘았다. 주민들은 촛불을 밝히고 폭죽을 터뜨렸다. 하지만 독립전쟁은 최종적으로 독립을 거머쥔 1783년까지 지루하게 이어졌다. 이해에 열세 개 신생주가 독립기념일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독립기념일은 1941년에 가서야 연방 국경일로 공식 선포됐다. \n미국의 제2대 대통령이었던 존 애덤스는 독립선언서 서명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 후손들이 이날을 가장 성대한 축제로 기념하리라고 생각하오 … 국토를 가로질러 공연\, 게임\, 스포츠\, 축포\, 타종\, 모닥불\, 조명을 통해 이날을 장대하고 화려하게 (기념해야) 할 것이오”라고 적었다. 존 애덤스의 글은 후대의 독립기념일 행사를 미리 예측한 것일 수도 있고 그에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다. 실제로 초창기 독립기념일 혹은 ‘7월 4일’ 경축 행사에서는 게임과 스포츠 경기\, 공연\, 민병대 퍼레이드\, 불꽃놀이와 더불어 총포를 자유롭게 발포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총기와 불꽃놀이로 인해 부상자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심지어는 사망자가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1900년대 초반이 되자 시민들이 정부 관계자들을 설득하여 독립기념일에 총기 소지를 금하고 불꽃놀이를 제한했다. ‘안전하고 분별 있는 7월 4일’이라는 표어가 널리 확산됐으며 안전과 상식을 강조할 목적으로 오늘날에도 이 표어가 통용되고 있다. 지금은 상당수 도시에서 아예 불꽃놀이를 금지하거나 체리 폭탄과 스파클러 같은 소형 폭죽만을 허용하고 있다. 몇몇 도시들은 자격을 갖춘 화약 전문가를 고용하여 지역 내에서 불꽃놀이를 개최하는 경우도 있다. \n미국인들은 매년 독립기념일이 돌아오면 학교나 직장을 벗어나 하룻동안 휴식을 갖는다. 지역사회나 가족 단위로 핫도그와 햄버거\, 감자 샐러드\, 베이크드빈스\, 파이\, 수박 등 평소 좋아하던 음식을 나누면서 온종일 피크닉을 즐긴다. 오후에는 생생한 음악이나 친선 야구 경기 혹은 프리스비 주고받기를 빼놓을 수 없으며 2인3각 경주와 파이 먹기 혹은 수박 먹기 대회가 포함될 수도 있다. 일부 도시에서는 시민들이 ‘건국 시조’나 초기 식민지 개척민 복장으로 고등학교 악대의 합주에 맞춰 시가지를 행진하는 퍼레이드를 기획하기도 한다. 저녁 무렵이 되면 시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시에서 주관하는 불꽃놀이를 관람한다. 전국 각지에서 특별한 행사들이 개최된다. \n예를 들어\,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의 경우에는 독립선언서 서명식이 거행됐던 독립기념관에서 프리덤 페스티벌이 펼쳐진다. 이 행사에서는 전통 복장을 차려 입은 참가자들이 역사 속의 장면을 재연하고 관객을 상대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경우가 많다. 매사추세츠의 경우 존 F. 케네디 함이 7월 4일에 돛을 활짝 펴고 보스턴 항으로 입항하면 수백 명의 시민이 바다 위에서 벌어지는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가운데 보스턴 팝스 오케스트라가 애국심을 고취하는 곡들을 연주한다. \n자유의 종 \n‘국토 전역에서 모든 시민들에게 자유를 선포한다.’ \n7월 4일에 종을 타종하는 모습과 소리는 대부분의 미국인에게 자유를 상징하며 신생국 미국이 태동했을 당시 필라델피아에 울려 퍼진 자유의 종을 떠올리게 만든다. \n한때 자유의 종은 지금은 독립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필라델피아 주정부 청사에 걸려 있었다. 자유의 종은 대통령 선거와 유력 정치인의 장례식 그리고 독립기념일을 당연히 포함하여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타종 행사에 사용됐다. 자유의 종은 잉글랜드에서 제작되어 1752년에 필라델피아에 도착했다. 하지만 맨 처음 종을 치는 순간 금이 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러자 보수 작업이 이뤄졌으며 그후로는 83년 동안 특별한 날에만 종을 울렸다. 독립선언서 서명을 기념하여 1776년 7월 8일에 실시된 타종식이 가장 대표적인 예였다. \n자유의 종은 1846년 이후에 다시 균열을 일으켰으며 더 이상의 훼손을 막기 위해 종루에서 철거됐다. 그 후로 자유의 종은 독립기념관에 전시됐다. 오늘날에는 국가독립역사공원 내에 설치된 자유의 종 센터에 보관되어 있으며 관람객에게 연중 개방되고 있다. \n한번은 잉글랜드 주조 공장에서 균열이 생긴 자유의 종을 회수한 후 녹여서 무상으로 새 종을 제작하겠노라고 제안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미국 측 관계자들은 자유의 종을 원상 그대로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미국 국민들이 예전의 종에 애정을 품고 있으며 갈라진 금조차도 소중한 전통과 가치의 일부분을 구성한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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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대한민국 제헌절 (Korean Constitution Day)
DESCRIPTION:제헌절(制憲節)\n대한민국 헌법의 공포를 기념하는 국경일(7.17.)\n1948년 ‘5.10선거’에 의해 구성된 제헌국회는 조직이 구성되자 바로 헌법제정에 착수하여 작성된 헌법안을 6월 23일 제16차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였다. 마침내 1948년 7월 12일 ‘대한민국 헌법’이 국회에서 완전히 통과되었고\, 이렇게 제정된 헌법은 7월 17일 오전 10시 국회의사당에서 의장 이승만이 서명한 후 공포하였다. 이 날을 기념하여 7월 17일 제헌절이라고 하게 되었다. \n제헌절 이외에도 우리나라는 1949년 10월1일 제정 공포된 ‘국경일에 관한 법률'(법률 제53호)에 따라 3월 1일 3.1절\, 8월 15일 광복절\, 10월 3일 개천절\, 10월 9일 한글날을 국경일로 정했다. 제헌절을 포함한 5대 국경일은 2007년 까지는 공휴일로 지정되었으나\, 2008년부터 공휴일이 아닌 국경일로 바뀌었다. \n헌법의 뿌리 \n \n참고: 헌법재판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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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국제 왼손잡이의 날 (International Lefthanders Day)
DESCRIPTION:국제 왼손잡이의 날(International Lefthanders Day)은 왼손잡이의 인권 신장과 인식 변화\, 왼손 사용에 대한 편견 개선을 추구하는 날로\, 매년 8월 13일이다. 1976년에 제정되었다. \n8월 13일로 지정된 이유는 세계 최초로 국제 왼손잡이협회를 창립한 미국인 딘 켐벨(Dean R. Campbell)의 생일이기 때문이며\, 이후 ‘영국 왼손잡이협회’의 노력으로 1992년부터 공식 기념일로 지정되어 행사가 열리게 되었다. 해마다 오른손잡이들에게 왼손잡이용 병따개나 가위 등을 통해 왼손잡이의 일상을 체험하게 하고 왼손만 사용하는 게임을 하는 방식으로 왼손잡이가 겪는 고충을 알리고\, 오른손 중심의 생활용품의 개선을 촉구하는 이벤트를 펼친다. 2008년에는 전 세계 네티즌을 대상으로 배우 안젤리나 졸리\, 가수 폴 매카트니\, 스포츠 선수 라파엘 나달\, 정치인 버락 오바마 등을 후보로 투표를 실시해 오바마 대통령을 ‘올해의 왼손잡이’로 선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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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칠월칠석
DESCRIPTION:칠석(七夕)은 한국\, 중국\, 일본 민간전설의 견우와 직녀 전설에서 견우와 직녀가 1년에 한 번 만나는 날로\, 칠석날로도 불린다. 한국\, 중국\, 대만 등에서는 음력 7월 7일이지만\, 일본은 양력 7월 7일이다. \n이날은 은하수 동쪽에 있는 견우와 서쪽에 있는 직녀가 까마귀와 까치가 놓은 오작교(烏鵲橋)에서 1년에 한 번 만나는 날이라고 전하여진다. 이날 민간에서는 명절 음식으로 밀국수\, 밀전병\, 호박부침\, 백설기 등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처녀들은 견우와 직녀 두 별을 보고 절하며 바느질 솜씨가 늘기를 기원하고\, 많은 사람이 이날 밤 견우와 직녀를 소재로 삼아 시를 짓기도 한다. \n기원\n‘칠석’의 명칭이 시경(詩經)에 처음 등장하여\, 춘추전국시대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견우직녀에 관한 전설은 한국\, 중국\, 일본 모두 비슷하다. \n전설\n옛날 하늘의 목동인 견우(牽牛)와 옥황상제의 손녀인 직녀(織女)가 서로 사랑에 빠져 일은 않고 게으름을 피우자\, 화가 난 옥황상제는 그들 두 사람을 은하수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 놓았다. 두 남녀가 애타게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다 못한 까치와 까마귀들이 매년 7월 7일 밤(칠석)이 되면 옥황상제 몰래 하늘로 날아가 서로 머리를 맞대는 다리를 놓아 두 사람을 만나게 해 주었다. 그래서 까치와 까마귀는 모두 머리가 벗겨지고\, 이날 저녁에 두사람이 만남을 기뻐하는 눈물이 비가 되어 내리며\, 다음날에는 이별을 슬퍼하는 눈물이 비가 되어 내린다고 한다. \n한국의 칠석\n\n평안남도 대안시 덕흥리의 5세기초 고구려 광개토왕 시대의 고분 안쪽 벽화에 견우와 직녀가 그려졌다.\n여자들은 직녀성에 바느질 솜씨가 늘기를 빌었다.\n아이들은 견우와 직녀를 소재로 시를 지었다.\n옷과 책을 볕에 말린다.\n칠석날 새벽에는 참외\, 오이 등의 1년생 과일을 상에 놓고 절하며 솜씨가 늘기를 빈다.\n북두칠성에 장수와 복을 빌기도 했다.\n경상북도 영일에서는 바닷물이 약수가 된다고 여겨 멱을 감는다.\n칠석날은 신이 내려와서 수확량을 정해준다고 여겨 아침 일찍 들에 나가지 않거나 집안에서 근신한다.\n민간에서는 명절음식으로 밀국수·호박부침 등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n\n관련 문화\n\n광한루 : 15세기에 남원 광한루에 칠석에서 유래한 오작교가 세워졌다. 춘향전에서는 춘향과 이몽룡이 사랑을 속삭이는 장소로 이 오작교가 등장하였다.광한루(廣寒樓)는 전라북도 남원시에 있는 누각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281호로 지정되었다.\n칠석의 여름 : 칠석 때 열리는 부관육상경기대회에서 만나는 일본인 여학생과 한국인 남학생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n情人节 : 중국에서는 칠석을 연인의 날(情人节)로 정해 선물을 하거나 데이트를 하는등 연인과 함께 보내는 날로 보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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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Labor Day (미국 노동절)
DESCRIPTION:노동자를 위한 국경일인 노동절은 노동자가 국가에 이바지하는 업적을 기리는 동시에 노동자의 투쟁에 대한 국민의 의식을 제고할 목적으로 제정됐다. 노동절은 9월 첫째 월요일이다. \n열한 살이던 피터 맥과이어는 뉴욕 거리에서 신문을 팔았다. 그는 구두를 닦고 상점을 청소했으며 나중에는 심부름을 하며 돈을 벌었다. 때는 1863년이었고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막 남북전쟁에 참전한 처지였다. 피터는 어머니와 여섯 남매의 생계를 도와야 했다. 19세기에 유럽 등지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들은 상당수가 뉴욕과 시카고를 비롯한 대도시에 정착했다. 그들은 생활 여건이 자신들이 애초에 꿈꿨던 것처럼 풍족하지 않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다수의 이민 가정은 도심 빈민가의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생활했다. 여섯 세대가 한 집에서 거주하는 경우도 많았다. 근로 환경은 그보다 더 심각했다. 남성과 여성\, 심지어는 아주 어린 아이들까지도 공장\, 방직공장\, 제철소\, 광산\, 공사장에서 일했다. 그들은 가혹한 환경에서 하루 12시간 내지 14시간을 일해야 했으며 1주일에 7일을 일터에서 보내는 경우도 허다했다. 식사를 하는 동안에만 잠깐 휴식을 취할 수 있었으며 휴가나 복리후생은 전혀 허락되지 않았다. 몸이 아플 때에도 해고가 두려워 억지로 출근을 해야 했다. 수천 명이 일자리가 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에는 노동자의 권리라는 개념이 없었으며 공장주는 노동자를 제멋대로 취급했다. 이민 노동자들의 상황은 특히 취약했다. \n피터 맥과이어는 열일곱 살에 피아노 가게에 도제로 들어갔다. 새 직장에서 상업을 배울 수 있었던 까닭에 그 전까지의 일자리들보다는 나았지만 그는 여전히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을 강요받았다. 그는 밤이면 경제학이나 사회 문제를 다루는 모임이나 강의에 참가했다. 그가 관심을 가졌던 분야 중 하나는 근로 조건이었다. 당시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위험한 작업 환경과 불확실한 고용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근로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자 조합을 결성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1872년 봄\, 피터 맥과이어를 비롯한 10만 명의 노동자들은 파업에 돌입했으며 노동 시간 단축을 요구하면서 가두 시위를 벌였다. \n이 사건을 계기로 피터는 향후에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조직화된 노동 운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이듬해에 그는 노동자와 실직자들을 상대로 군중 강연에 매진했으며 정부에 일자리와 구제 기금을 요구하며 로비를 벌였다. 피터 맥과이어에게 그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는 ‘공공의 평화를 위협하는 자’로 인식됐다. 시 정부는 그의 요구를 무시했다. 피터는 기업주들 사이에서 골칫거리로 여겨졌으며 자신의 분야에서 직장을 구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동부 해안을 남북으로 오가며 노동자들에게 조합 결성을 촉구하는 강연을 시작했다. 1881년에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로 이주한 그는 현지 목수들을 규합하기 시작했다. 그는 시카고에서 목수 연맹을 조직했으며 이를 계기로 전국 목수 노동조합이 출범했다. 그는 훗날 전미 목수·목공 연맹의 사무총장을 지냈다. \n \n산업별로 노동자들을 조직화하는 방식은 전국으로 확산됐다. 공장 근로자\, 부두 노동자\, 공구 제작공들이 하루 8시간 노동과 고용 안정성\, 직업의 미래를 보장받을 권리를 속속 요구하기 시작했으며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켰다. 피터 맥과이어와 전국의 노동자들은 노동자가 국가에 이바지하는 업적을 기리는 동시에 자신들의 투쟁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제고할 목적으로 노동자의 날을 지정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독립기념일과 추수감사절 중간에 해당하는 9월 첫째 월요일을 선택했다. \n1882년 9월 5일\, 제1회 노동절 퍼레이드가 뉴욕에서 개최됐다. 2만 명의 노동자들이 브로드웨이까지 가두 행진을 벌였다. 그들은 ‘노동이 부를 창출한다’와 ‘8시간 노동\, 8시간 휴식\, 8시간 여가!’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있었다. 퍼레이드가 끝난 후에는 도시 전역에서 피크닉이 열렸다. 노동자와 행사 참가자들은 아이리시 스튜와 집에서 구운 빵\, 애플파이를 즐겼다. 야간에는 불꽃놀이가 밤하늘을 수놓았다. 그 후로 몇 년 동안 노동자를 기념하는 날이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으며 모든 주가 노동절을 지정했다. 1894년에 의회는 노동절을 국경일로 제정했다. \n오늘날에는 해마다 9월 첫째 월요일이 돌아오면 차분하게 노동절을 기념한다. 몇몇 도시는 퍼레이드나 지역 단위의 피크닉을 주관한다. 상당수 정치인들은 이날 유세를 시작으로 선거 캠페인에 ‘돌입’한다. 대부분의 미국 국민은 노동절을 여름의 끝자락으로 인식하며 해변이나 유명 휴양지는 마지막 3일 연휴를 만끽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다수의 학생들은 노동절 직후에 새로운 학기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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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추분
DESCRIPTION:추분(秋分)은 24절기의 16번째로 태양 황경이 180도가 되는 때를 말한다. 백로와 한로의 사이에 있으며\, 양력으로는 9월 22일~23일경[1]에 든다. \n춘분과 추분을 흔히 이분(二分\, Equinox; 이퀴녹스)이라고 총칭하는데\, 동지 이후 밤의 길이가 조금씩 짧아져 춘분이 되듯이\, 하지 이후 낮의 길이가 조금씩 짧아져 추분이 되면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 추분 이후부터 차츰 낮이 짧어져 바야흐로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다가옴을 느낄 수 있다. 기상학적으로 가을이 시작되는 시점(평균기온 20도 이하)도 추분 전후이다. \n오곡백과가 풍성한 시기로\, 추석도 대충 이때에 들지만 태음력이기에 편차가 심하다. 그 때문에 연휴인 추석과 추분이 겹쳐지면 환절기성 질병이나 무기력증에 걸릴 수도 있다. \n추분에는 벼락이 사라지고 곤충들은 땅속으로 숨고 물이 마르기 시작하며 태풍이 부는 때라고 하며\, 이날엔 논밭의 곡식들과 목화를 재배하고 고추를 따서 말리며 그 밖에도 잡다한 가을걷이 일을 끝냈다고 한다. 그리고 호박고지\, 박고지\, 깻잎\, 고구마순도 이맘때 거둬 산채를 말려 묵나물을 만들 준비를 했다고 하며\, 또한 이날의 바람을 보고 이듬해 농사를 점치는 풍속이 있으며 만약에 건조한 바람이 불면 다음해 대풍이\, 만약 추분이 사일(社日) 앞에 있으면 쌀이 귀하고 뒤에 있으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고 하며\, 바람이 건방이나 손방에서 불어오면 다음해에 큰 바람이 있고 감방에서 불어오면 겨울이 몹시 춥다고 믿었으며. 또 작은 비가 내리면 길하고 낭이 개면 흉년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외에도 추분엔 노인성제를 지내 수명장수를 기원했다고 전해진다. \n이날의 제철 음식은 고등어\, 광어\, 갈치\, 가지\, 버섯\, 호박고지\, 박고지\, 깻잎\, 고구마순 등이라고 한다. \n추분은 춘분보다는 덜하지만 역시 태양력 등으로 여러 문화에서 중요시 되는 날이다. 동양에서 용은 춘분에 하늘로 올라갔다가 추분에 못으로 돌아온다. 프랑스 혁명은 공화정을 추분(9월 21일)에 성공시켜 프랑스 공화력의 첫날이 되기도 했다. 물론 폐지됐지만. 켈트족의 축제와 일본의 공휴일도 춘분처럼 추분을 역시 기념한다. \n당태종은 입춘부터 추분까지 사형을 금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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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추석 (한가위)
DESCRIPTION:추석(秋夕) 또는 한가위는 음력 8월 15일에 치르는 명절로 설날과 더불어 한국의 주요 명절이다. 추석은 농경사회였던 예로부터 지금까지 한국인에게 가장 중요한 연중 최대 명절이다. 중추(仲秋)\, 중추절(仲秋節)\, 가배일(嘉俳日)\, 한가윗날\, 팔월 대보름 등으로도 부른다. 가을 추수를 끝내기 전에(조선시대 추수는 음력 9월) 덜익은 쌀로 만드는 송편과 햇과일로 조상들께 감사의 마음으로 차례를 지내며\, 특히 송편은 추석에 먹는 별미로 들 수 있다. 추석에는 일가친척이 고향에 모여 함께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는 전통이 있다. 이 때문에 해마다 추석이 오면 전 국민의 75%가 고향을 방문하여 전국의 고속도로가 정체되고 열차표가 매진되는 현상이 벌어지는데\, 이를 흔히 ‘민족대이동’이라고 부른다. 추석은 음력설보다 매출\, 인구이동 등에서 수치적으로 더 높은데\, 이는 설날이 양력설과 음력설로 나뉘며\, 양력설을 쇠는 가정도 있어 수치가 분산되기 때문이다. 추석의 날짜는 하지로부터 73일째 경과한 시점으로 정했다. \n대한민국에서는 추석의 전날(음력 8월 14일)부터 다음날(음력 8월 16일)까지 3일이 공휴일[1]이지만\, 개천절이나 한글날과 겹치면 최장 10일로 추석 연휴가 늘어난다. \n추석에는 널뛰기\, 제기차기\, 강강술래\, 윷놀이\, 씨름 등의 놀이를 한다. \n참고: 위키백과\,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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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개천절
DESCRIPTION:10월 3일. 서기전 2333년(戊辰年)\, 즉 단군기원 원년 음력 10월 3일에 국조 단군이 최초의 민족국가인 단군조선을 건국했음을 기리는 뜻으로 제정되었다.\n\n그러나 개천절은 ‘개천(開天)’의 본래의 뜻을 엄밀히 따질 때 단군조선의 건국일을 뜻한다기보다\, 이 보다 124년을 소급하여 천신(天神)인 환인(桓因)의 뜻을 받아 환웅(桓雄)이 처음으로 하늘을 열고 태백산(백두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어 홍익인간(弘益人間)·이화세계(理化世界)의 대업을 시작한 날인 상원 갑자년(上元甲子年)주 01) 음력 10월 3일을 뜻한다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성이 있다.\n따라서 개천절은 민족국가의 건국을 경축하는 국가적 경축일인 동시에\, 문화민족으로서의 새로운 탄생을 경축하며 하늘에 감사하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적 명절이라 할 수 있다.\n\n민족의 전통적 명절을 기리는 행사는 먼 옛날부터 제천행사를 통하여 거행되었으니\, 고구려의 동맹(東盟)\, 부여의 영고(迎鼓)\, 예맥의 무천(舞天) 등의 행사는 물론이요\, 마니산(摩尼山)의 제천단(祭天壇)\, 구월산의 삼성사(三聖祠)\, 평양의 숭령전(崇靈殿) 등에서 각각 행해진 제천행사에서 좋은 사례를 볼 수 있다.\n그리고 특히 우리 민족은 10월을 상달[上月]이라 불러\, 한 해 농사를 추수하고 햇곡식으로 제상을 차려 감사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제천행사를 행하게 되는 10월을 가장 귀하게 여겼고\, 3일의 3의 숫자를 길수(吉數)로 여겨 왔다는 사실은 개천절의 본래의 뜻을 보다 분명히 한다고 하겠다.\n\n이러한 명절을 개천절이라 이름짓고 시작한 것은 대종교(大倧敎)에서 비롯한다. 즉\, 1909년 1월 15일서울에서 나철(羅喆)을 중심으로 대종교가 중광(重光)되자\, 개천절을 경축일로 제정하고 매년 행사를 거행하였다.\n그리하여 일제강점기를 통하여\, 개천절 행사는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특히 상해임시정부는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하여 경하식을 행했고\, 충칭(重慶) 등지에서도 대종교와 합동으로 경축행사를 거행하였다.\n\n광복 후 대한민국에서는 이를 계승하여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식 제정하고\, 그때까지 경축식전에서 부르던 대종교의 「개천절 노래」를 현행의 노래로 바꾸었다.\n개천절은 원래 음력 10월 3일이므로 대한민국 수립 후까지도 음력으로 지켜왔는데\, 1949년에 문교부가 위촉한 ‘개천절 음·양력 환용(換用)심의회’의 심의결과 음·양력 환산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와 ‘10월 3일’이라는 기록이 소중하다는 의견에 따라\, 1949년 10월 1일에 공포된「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의거\, 음력 10월 3일을 양력 10월 3일로 바꾸어 거행하게 되었다.\n이에 따라 대종교에서 행하던 경하식은 국가적 행사에 맞추어 양력 10월 3일에 거행하고\, 제천의식의 경우만은 전통적인 선례에 따라 음력 10월 3일 상오 6시에 행하고 있다.\n이 날은 정부를 비롯하여 일반 관공서 및 공공단체에서 거행되는 경하식과 달리\, 실제로 여러 단군숭모단체(檀君崇慕團體)들이 주체가 되어 마니산의 제천단\, 태백산의 단군전\, 그리고 사직단(社稷壇)의 백악전 등에서 경건한 제천의식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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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한글날
DESCRIPTION:한글날(영어: Hangeul Day\, Korean Alphabet Day)은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다. \n세종은 일반 민중이 글자 없이 생활하면서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음을 마음 아프게 여겼다. 그들 민중은 관청에 호소하려 해도 호소할 길이 없었고\, 억울한 재판을 받아도 바로잡아 주기를 요구할 도리가 없었으며\, 편지를 쓰려고 해도 그 어려운 한문을 배울 수가 없었다. 또한\, 농사일에 관한 간단한 기록도 할 방법이 없었다.\n세종은 백성들의 이러한 딱한 사정을 매우 안타깝게 여겼던 성군으로\, 주체성 강한 혁신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한문은 남의 글이므로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적더라도 매우 어색하여 뜻을 제대로 전할 수가 없었다.\n그 밖의 다른 나라 글자들은 도저히 빌려 쓸 만한 것이 못된다고 생각하였다. 한편 당시의 상황은 새 글자를 만들어 낼 만한 여러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n\n첫째\, 고려 말기 몽고에게 당한 곤욕으로\, 그리고 원나라와 명나라의 갈음 시기에 즈음하여\, 나라 안에서는 자아 의식이 강해지기 시작하였다.\n\n둘째\, 주위의 민족들은 저마다 자기 나라의 글자를 가지고 있었으나 우리는 한자를 빌려 썼는데\, 그것으로 우리말을 적는 것은 여간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n정인지의 표현을 빌리면\, 한자로 우리말을 표기하는 방법이었던 이두글[吏讀文]은 “막혀 잘 통하지 않고\, 비단 품위가 없고 체계가 없어 상고할 길이 없을 뿐 아니라\, 말을 적는 데 있어서는 만에 하나도 제대로 전달하지를 못한다(或澁或窒 非但鄙陋無稽而已 至於言語之間 則不能達其萬一焉).(훈민정음 해례) ”고 하였다. 이처럼 일반 백성의 글자 생활은 극도로 빈곤 상태에 있었다.\n\n셋째\, 세종의 개인적인 역량은 새 글자를 만드는 데 크게 작용하였다. 왕은 학문을 좋아하여 성군으로서의 도리를 깊이 체득하였고\, 외국 세력에 대하여 우리를 지키려는 주체성이 강했으며\,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려는 민본 정신이 투철했던데다 혁신적인 정책을 수행해 나가는 과감한 성격을 겸비하고 있었다.\n\n넷째\, 집현전에는 세종의 이러한 정책을 도울 만한 많은 학자들이 모여 있었다.\n\n다섯째\,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원만히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는 중국말의 통역을 길러야 했는데\, 그들을 과학적으로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중국말의 소리를 체계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따라 중국 운학을 연구하게 되었는데\, 이 운학의 체계는 새 글자를 만들어 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n\n이러한 상황에서 1443년(세종 25) 음력 12월 세종은 ‘훈민정음’이라는 새 글자를 만들어 냈는데(세종실록과 훈민정음해례의 끝에 실린 정인지의 꼬리글에 따름)\, 이러한 독창적인 글자를 만든 일은 세계 역사에 일찍이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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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콜럼버스데이는 1492년 스페인을 출발하여 지금의 바하마 군도에 도착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첫 항해를 기념하는 연방 법정 공휴일이다. 콜럼버스데이는 10월 둘째 월요일이다. \n수백 년의 세월이 흐르기 전까지 콜럼버스의 항해를 축하하는 행사는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1792년\, 뉴욕에서 콜럼버스를 기리는 행사가 열렸으며 그에게 헌정하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얼마 후에는 워싱턴 시의 공식 지명이 컬럼비아 특별구로 변경되고 미국의 수도로 지정됐다. 그 다음 세기에는 전국 각지의 조형물과 거리\, 하천 그리고 도시에 콜럼버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1892년 시카고 콜롬버스 박람회에서는 그의 범선 세 척을 재현한 전시물이 관객들에게 공개됐다. \n콜럼버스데이는 뉴욕 시를 비롯한 전국의 이탈리아 이민 사회가 노력을 기울인 것이 부분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여 공휴일로 지정될 수 있었다. 뉴욕의 이탈리아 이민들은 이탈리아 ‘토박이’에 대한 자긍심을 바탕으로 1866년 10월 22일에 제1회 ‘아메리카 대륙 발견’ 축제를 조직했다. 그 이후로 다른 도시에서도 이탈리아 이민들이 연회\, 퍼레이드\, 무도회 등 유사한 행사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1869년에는 샌프란시스코의 이탈리아 이민들이 10월 12일에 축제를 열면서 그날을 ‘콜롬버스데이’라고 불렀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1937년에 10월 12일을 콜롬버스데이로 공식 선포했다. 지금은 국민들이 연휴를 즐길 수 있도록 10월 둘째 월요일이 콜롬버스데이로 지정되어 있다. \n최근 수십 년 동안 콜럼버스데이는 상당한 논란을 빚고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을 중심으로 사회 일각에서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는 주장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은 아메리카 대륙을 최초로 그리고 실제로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아야 할 주체는 콜럼버스가 아니라 아메리카 원주민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화해를 추구하는 의미에서 이날이 오면 아메리카 원주민을 기억해야 한다고 느꼈다. 시민들은 주정부와 지방정부에 아메리카 원주민의 날을 정식으로 지정하거나 콜럼버스데이를 아메리카 원주민의 날로 대체할 것을 청원했다. 그 결과 일선 학교들이 콜럼버스데이 교육과정에 아메리카 원주민에 관한 내용과 유럽인과의 접촉에 따른 영향을 포함시키기 시작했다. 현재 일부 주의 경우에는 콜럼버스데이와 아메리카 원주민의 날이라는 명칭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그 외의 주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의 날을 별도로 지정했다. 사우스다코다 주는 토착민을 기리는 뜻에서 공식적으로 콜럼버스데이를 아메리카 원주민의 날로 대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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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세계 손씻기의 날
DESCRIPTION:10월 15일은 ‘세계 손 씻기의 날’\n80여 개 나라에서 Clean hands saves lives 캠페인 개최 \n \n10월 15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손 씻기의 날’입니다. 열악한 위생환경으로 인한 설사병과 급성호흡기질환 등으로 5 세 미만 어린이 350 만명이 생명을 잃습니다. \n올해로 두 번째를 맞는 ‘세계 손 씻기의 날’은 비누와 물로 손을 깨끗이 씻는 일이 가장 효과적인 건강관리법의 하나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n물만 사용해서 손을 씻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화장실을 사용한 뒤나  음식을 조리하기 전에 비누와 물을 사용하여 손을 씻으면 설사병 발생의 40%\, 호흡기 질환의 25%를 줄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최근 기승을 부리는 신종플루를 막는 방법으로 효과적입니다. \n손 씻기가 생명을 구하는 습관임에도 불구하고\, 비누를 사용한 손 씻기는 좀처럼 실용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n비누는 전세계 대부분의 가정에 비치되어 있지만 손 씻기가 반드시 필요한 결정적인 시기에도 실제 사용하는 비율은 0~34% 밖에 되지 않습니다. 지속적으로 손을 씻도록 행동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지역사회가 주체가 되어  교육과 홍보 등을 통해 주민들에게 손 씻기의 의미를 이해시키고 동기 부여를 해 주어야 합니다. \n오염된 물과 열악한 환경은 질병발생률을 높여 노동자와 어린이들이 일터와 학교에 나가지 못하게 만들고 국가적인 경기침체를 발생시킵니다. 비누를 사용한 손 씻기가 실천되지 않는다면 보건\, 교육\, 위생 등의 활동에도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n올해는 “깨끗한 손이 생명을 구한다(Clean hands saves lives)”의 슬로건 아래 학생들의 태도 변화를 유도하고자 합니다. 학교에서 비누로 손씻기를 비롯한 물과 위생에 대해 교육한다면 가정과 지역사회로 손 씻기가 확산되는 효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n손 씻기와 결합된 위생 프로그램은 유엔 새천년개발계획(MDG)의 2항(보편적인 초등교육의 달성)과 3항(성 평등 달성과 여성의 역량 강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비누로 손 씻기의 비율의 높아지면 4항(어린이사망률 감소)에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n비누로 손 씻기는 공중보건의 초석이며\, 저렴한 가격으로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효과적인 백신입니다. \n지난해에는 5개 대륙\, 86개국에서 약 2억 명 어린이들이 이 캠페인에 참여했습니다. 콜롬비아\, 방글라데시\, 케냐\, 필리핀\, 영국\, 에티오피아 등지에서 수많은 학교와 지역사회가 손 씻기 운동에 동참했습니다. \n올해도 80여 개국에서 교사\, 학부모\, 유명 인사\, 정부 관계자 등 수백만의 인원이 이 캠페인에 참여합니다.  “세계 손 씻기의 날”은 전세계 정부와 국제기구\, 시민 사회 단체\, NGO\, 민간기업\, 개인 등 다양한 구성원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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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상강
DESCRIPTION:상강(霜降)은 24절기 중 하나이며\, 태양의 황경이 210도가 되는 시기를 말한다. 양력으로는 10월 23일 혹은 10월 24일경에 해당된다. 전갈자리가 시작되는 때이기도 하다. \n서리가 내린다는 뜻대로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지기 시작한다. 반면 낮의 날씨는 매우 쾌청하다.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때도 상강 전후. 과거에는 상강 때가 가을 추수의 마지막 즈음이라 추수를 끝내자고 독려하는 노래가 나오기도 했지만\, 지금은 도구가 발달해서 추수 시간이 더 빨라졌으며 종자용 호박\, 밤\, 감\, 조\, 수수\, 고추\, 깻잎 등을 수확하고\, 고구마와 땅콩을 캔다. \n이모작이 가능한 남부지방에서는 보리 파종을 하는 시기이다. 농가의 속담으로는 “상강 90일 두고 모 심어도 잡곡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이모작을 해도 쌀이 낫다는 뜻이다. 상강을 90일 앞둔 날이라면 7월 25-26일이 된다. 물론 모내기로는 매우 늦은 시점이지만\, 이모작 지역에서 상강이 절기로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마늘을 심기도 한다. \n또 이때는 국화가 피기 때문에 국화주\, 국화전\, 화채 등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제철 음식으로는 추어탕\, 무 홍시채\, 생강차\, 호박죽\, 햅쌀밥\, 약밥\, 토란\, 고구마\, 달걀찜\, 잡곡\, 은행 등이 있다. \n또 제주도에서는 조 이삭은 상강 넘으면 더 안여문다(고로 서리 내리기 전에 빨리 베라는 뜻)\, 상강이 지나면 바닷고기에 알이 박힌다는 말(맛이 없어진다)이 있는데\, 이처럼 월동준비로 매우 바쁜 시기다. \n조선시대에는 군령권을 상징하는 군기(軍旗)인 둑(纛) 앞에서 경칩과 상강 때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이를 둑제(纛祭)라고 하는데\, 소사로 분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거행면에서는 격식을 한 단계 올려서 제수도 다른 소사보다 더 풍성하게 차리고 제관도 한 직급 올려서 병조판서가 맡았다. 특히 농사력으로는 이 시기에 추수가 마무리되는 때이기에 겨울맞이를 시작한다. \n고대 중국에서는 상강이 지난 다음 입동이 되기 5일 전(말후)에 벌레들이 겨울잠을 자러 들어간다고 했다. 상강 초후에는 승냥이가 짐승을 잡으러 다니고\, 중후에는 풀과 나무가 누렇게 떨어지는 낙엽의 시기라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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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대한민국 독도의날
DESCRIPTION:■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  독도의 날\n대한제국 광무4년(1900년) 10월 24일\, 의정부회의는 내부대신 이건하가 제출한 「울릉도(鬱陵島)를 울도(鬱島)로 개칭하고\, 도감(島監)을 군수(郡守)로 개정하는 청의서(請議書)」를 의결하였다. \n10월 25일\, 고종황제는 의정부회의 결정사항에 따라 ‘울릉도(鬱陵島)를 울도(鬱島)로 개칭하여 강원도에 부속하고 도감(鬱島)을 군수(郡守)로 개칭하여 관제 중에 편입하고(제1조)\, 군청 위치는 태하동(台霞洞)으로 정하고\, 구역은 울릉전도(鬱陵全島)와 죽도(竹島\, 저동 앞의 ’대섬‘) 석도(石島)를 관할한다’(제2조)는 대한제국칙령(勅令) 제41호를 제정했다. 칙령은 10월 27일자 관보(제1716호)에 게재되어 대외에 공포되었다. \n일본은 대한제국 칙령을 부정하기 위해 ‘울도군 관할구역에 포함된 석도(石島)는 독도가 아니라 울릉도 주변의 암초’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하지만 울릉도 주변에 석도라 할 수 있는 암초는 존재 하지 않는다. 또한 석도는 독섬(돌섬)을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이러한 사례는 전국에 산재해 있고\, 우리 지명을 글로 표기하는 방법의 하나이다. \n전남 완도군 노화면 고막리에서 부르는 ‘독섬’은 한자로 석도(石島)라 쓰고\, 고흥군 남양면 오천리의 독섬은 ‘독도(獨島)’로 쓰고 있다. \n일본은 1905년 2월 22일의 시마네현고시 제40호를 통해 독도가 무주지(주인이 없는 섬)이기 때문에 일본의 영토로 편입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n그러나 시마네현고시 보다 5년 앞서 제정된 대한제국칙령 제41호에 의해 ‘무주지 선점’ 주장은 정면으로 부정되고 있다. \n2005년 3월 시마네현 의회는 시마네현 고시가 제정된 2월 22일을 이른바 죽도의 날로 정하는 조례를 제정하였고 2006년부터 기념식을 하고 있다. \n\n\n\n\n\n\n\n\n\n\n\n\n\n\n\n\n\n\n\n\n\n■ 대한제국 칙령과 시마네현 고시 비교 \n\n\n\n\n대한제국 칙령 제41호\n시마네현고시 제40호\n\n\n명칭\n대한제국칙령 제41호\n「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고 도감을 군수로 개정한 건」\n시마네현고시 제40호\n\n\n주체\n국가(대한제국)\n지방행정기관(시마네현)\n\n\n시기\n1900년 10월 25일\n1905년 2월 22일\n\n\n과정\n내무대신이 의정부회의에 청의서 제출→\n의정부회의 통과→\n고종 수결→관보를 통해 공포\n나카이 요오사부로가 영토편입대하원 제출→\n내무대신이 비밀문서로 내각회의 요청→\n내각회의에서 통과→\n시마네현 고시\n\n\n고시\n관보 게재\n회람\, 지방신문\n\n\n내용\n울릉도를 울도로 개칭\n독도를 울릉도 관제에 편입\n량고도(독도)는 주인인 없는 무주지\n량고도를 다케시마로 개칭\, 시마네현 오키에 편입\n\n\n기념일\n-독도의 날\n– 2000년\, 독도수호대 제정\n-다케시마의 날\n-2005년 3월 시마네현 의회에서 조례 제정\n2006년부터 기념행사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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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할로윈데이 (Halloween)
DESCRIPTION:10월 31일이 되면 저마다 독특한 분장을 한 수십 명의 어린이들이 이웃집 문을 두드리고\, 문이 열리면 ‘트릭 오어 트릿(Trick or Treat\, ‘사탕 안 주면 장난칠 거에요’의 의미)’라고 외친다. 해적과 공주\, 유령\, 그날의 인기 있는 남녀 영웅들이 모두 이웃들이 나누어 주는 사탕이나 다른 맛난 것을 받기 위해 가방을 벌린다. 이웃들은 사탕을 주면서 아이들의 의상에 놀라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가면 속 아이가 누구인지 맞추려 한다. \n미국의 다른 일부 휴일처럼 할로윈 의상은 여러 다른 전통이 혼합되면서 발전했다. ‘할로윈’이라는 말은 ‘올 할로우스 이브(All Hallows’ Eve)’라는 기원전 800년대 휴일의 이름에서 기원했다. 이날은 성스러운 날로 기념되던 11월 1일 ‘모든 성인의 날’ 전날 저녁이었다. 하지만 할로윈의 유래는 그보다 더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에 10월 31일은 켈트족의 새해 전날이었다. 2000년도 넘는 옛날에 살았던 켈트족은 지금의 아일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선조다. 이날 켈트족은 켈트족의 망자들의 왕을 기리는 삼하인 축제를 열었다. 이들은 삼하인이 저녁에는 귀신들이 걸어 다니며 산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해준다고 믿었다. 사람들은 하루 종일 음식을 만들고\, 밤이 되면 동물 머리와 가죽으로 치장한 채로 드루이드라고 불리던 성직자들이 주도하는 대형 모닥불 행사에 참석했다. 이들은 새해가 되기 전에 귀신들이 평화롭게 떠나기를 바라면서 자신들이 만든 음식을 마을 변두리로 가져가 혼령들이 찾을 수 있도록 남겨 두었다. 또한 삼하인 축제는 일년 중 추수기의 끝이자 춥고 어두운 시기의 시작을 의미했다. \n한참 후\, 10월 31일은 더 이상 한 해의 마지막 날이 아니었지만 수확을 축하하고 망자를 기리는 가을 축제는 계속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할로윈은 주로 어린이들을 위한 날이 됐다. ‘유령들’이 집집마다 다니며 사탕을 요구하고\, 사탕을 주지 않으면 집 주인에게 짓궂은 장난을 친다는 것이다. 1840년대에 아일랜드\, 영국\, 기타 켈트족 후예들의 국가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오면서 할로윈 전통도 함께 유입됐다. \n오늘날 많은 학교에서 할로윈 축제를 계획하며\, 일부 동네에서는 남녀노소 모두 좋아하는 ‘블록 파티’라는 파티를 연다. 보다 최근에는 성인들 역시 할로윈을 기념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역사 속 인물이나 정치인\, 영화배우\, 만화 속 캐릭터처럼 차려 입고 가장무도회나 시에서 후원하는 거리 파티에 참석한다. 많은 도시에서는 할로윈 분장을 한 자녀들과 부모가 초저녁에 쇼핑몰에서 만나기도 한다. 상점과 회사들도 어린이들을 위한 게임과 간식거리를 준비해 파티를 연다. 10대 청소년들 역시 학교에서 개성 있는 복장으로 춤을 즐기는데 더 기상천외한 의상일수록 더 환영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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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보행자의 날
DESCRIPTION:‘보행자의 날’은 산업화에 따른 미세먼지 증가\, 제한적인 에너지의 위기 도래\, 환경 보호 요구에 대응하고\, 국민 건강을 증진 시킬 수 있는 걷기의 중요성을 확산하고자\, 2010년에 사람의 두 다리를 연상케 하는 11월 11일을 보행자의 날로 지정하였다. \n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걷는 것을 일상화하면 건강을 지킬 수 있고 교통 체증 해소\, 교통사고 예방 뿐 만 아니라\, 온실가스 배출량이 감소하여 미세먼지 수준을 낮출 수 있다”면서\, “앞으로도 사람 중심의 보행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적 지원 노력을 적극적으로 펼쳐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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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순국선열의 날
DESCRIPTION:대한민국의 국권회복과 조국독립을 위해 희생하거나 헌신한 애국자 및 독립운동가 등의 순국선열들에 대한 추모와 존경을 표하는 날이자 그들의 독립정신 및 호국정신을 기리는 법정 기념일. 매년 11월 17일에 속해있다. \n193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임시회의 총회 때 임정요원이었던 지청천\, 차이석 등이 매년 11월 17일을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대한독립투사들의 넋을 기리고 그들의 충성심을 기리는 날로 독립투사들을 추모하는 날로 정하였고 1945년 해방 이후에는 민간단체 주관으로 열리게 되었다가 1962년부터 1969년까지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열렸다가 1970년부터 다시 민간단체 주최로 열리게 되었으며 1997년 독립유공자들의 요청에 따라 국가기념일로 재지정하고 국가보훈처에서 주최하게 되었다. \n1970년부터는 민간단체에서 주최하였기 때문에 국가공인 법정기념일에서 제외되었으나 1997년부터 매년 11월 17일을 순국선열의 날로 지정하여 국가공인 법정기념일로 지정하게 되었고 이날을 기점으로 추모식이 국가공인 주최로 열리게 되었다. 현충일과 비슷한 성격이지만 공휴일로 지정되지 않았으며 조기(弔旗)를 게양하지도 않는다. \n사실 11월 17일은 역사적으로도 치욕스러운 을사조약이 체결되었던 날로 을사조약 체결일인 11월 17일을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독립투사들을 추모하는 날로 기념하고 을사조약 체결의 역사적인 치욕을 새기기 위해서 지정하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을사조약이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좋은 편이 아닌 국가에 치욕을 주었다는 점을 고려하여 을사조약에 관한 내용 대신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독립투사들의 추모 분위기를 위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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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
DESCRIPTION:추수감사절(秋收感謝節\, Thanksgiving Day\, 땡스기빙데이)은 전통적인 북아메리카의 휴일로 미국의 경우 11월 넷째 목요일에\, 캐나다에서는 10월 둘째 월요일에 기념한다. 대한민국에서는 11월 셋째 일요일에 기념한다. 추수감사절에 미국인들은 한국의 추석과 같이 가족들끼리 모여 파티를 열어 칠면조를 비롯한 여러 음식을 만들어 먹고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또한 대부분의 학교와 직장에서는 여유롭게 휴일을 즐길 수 있게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금요일을 휴무로 하여 총 4일동안 쉬게 하는 경우가 많다. 추수감사절은 쇼핑시즌으로도 유명한데 검은 금요일이라고 불리는 금요일에는 모든 상점들이 세일을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쇼핑을 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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